1.
지난 4월 18일 현관앞에서 새끼를 낳은 그렝이를 집안에 들인지 세 달이 가까워옵니다.
두 달 지난 다음 어미 그렝이는 중성화수술 시키고,
그렝이가 입원한 사이 재빨리 새끼 세 마리 중 두 마리를 입양 보냈어요.
마지막 한 녀석, 두리는 몸이 허약해서 당장 입양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두리 데려갈 사람 없으면 제가 그렝이와 두리 다 거두지 뭐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입양의사자가 나타났습니다. 두리도 이제 건강해져 입양 보내는데 무리는 없고요.
두리를 입양보내고, 그렝이는 현관밖으로 내보내어 예전처럼 현관고양이로 살게 하고
저는 편안하게 집을 다시 차지할 것인가....
솔직히.... 고양이를 집에 들인 이후로, 집안은 항상 엉망진창이요,
하루도 잠을 깨지 않고 푹 잔 적이 없습니다(불면증이 더 심해져 죽을 지경. ㅠㅠ)
더군다나 더욱 문제는.... 그렝이가 전혀 순화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두달이 훨씬 넘었는데, 아직도 저에게 하악질, 건드리기는커녕 가까이 가지도 못합니다.
중성화수술할 때도 덫 빌려서 간신히 포획, 제가 후처치를 할 수도 없어서 입원을 시켰는데
길냥이를 많이 보신 협력병원에서조차 길냥이치고도 매우 사납다고 하시더라고요. ㅠㅠ
두리만 보내면, 그렝이는 원래 제 현관 앞 보일러실에 들어와 살던 애니까
다시 현관앞에 집 마련해주고 밥 챙겨주면서 돌봐주면 되겠지요.
저는 다시 편안한 일상의 삶과 집을 찾을 수 있고요.
2.
하지만 결국 그렇게 안하고 걍 두리랑 그렝이랑 사는 쪽으로 맘이 기울었습니다.
다른 것보다.... 그렝이가 퇴원하고 와서 그 사이 새끼 두마리 가버린 거 알고는
울고불고 하면서 남은 두리를 꼭 껴안고 핥고 하더라고요.
두리마저 보내면 그렝이가 너무 불쌍할 것 같았습니다.
두리마저 보내버리면 그렝이는 평생 혼자 살아야 하는 건데 너무 잔인하잖아요.
제가 강제로 중성화수술을 시켰으니, 마지막 아이와는 함께 살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3.
오늘까지 입양의사자에게 답장을 보내주기로 해서, 거절 답장을 보내려고 했는데....
오늘 사단이 났습니다.
며칠 전부터 그렝이는 매일 밤 20~30분씩 산책을 하고 오곤 했거든요.
밖에 자유롭게 다니던 애를 꼭 가둬두기만 하는 것도 못할 짓이라
나가고 싶어하면 문을 열어줬어요. 그래도 항상 20~30분만에 곧 돌아오더군요.
그런데 오늘은 두리를 데리고 나가려고 하더라고요.
혼자가 아니라 두리를 데리고 가려는 의사를 확실히 보이길래
그건 안된다고 딱 잘라 못하게 했는데..... 아뿔싸!
창 하나가 열려 있었던 겁니다.
그곳으로 그렝이와 두리 탈출.... 다행히도, 제가 금방 그걸 깨닫고 보니까
새끼 두리는 멀리 뛰어내리지 못하고 아직 창가에 매달려 있는 상태라
제가 녀석을 강제로 붙잡아 안으로 들였습니다.
밖에서는 어미 그렝이가 계속 두리를 부르고 있더군요.
그래서 두리를 안고 밖으로 나가 그렝이에게 두리를 보여줬습니다.
제가 두리를 붙들어서 안에 잡아놓았다고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렝이도 다시 집에 돌아왔습니다. 새끼가 인질로 있으니...;;;
이 소동을 겪고 나니 참 막막해지네요.
그렝이는 여전히 집에서 살 생각이 없어서 두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그렝이를 두리와 같이 두면, 틈이 보일 때마다 또 시도를 하겠지요.
만약 성공을 하면 두리까지 엄마따라 길고양이가 되어 버리는 셈인데...
그럴 바에야 차라리 두리는 입양을 보내고,
이처럼 나가고 싶어하는 그렝이는 내보내서 원하는 대로 살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게 그렝이나 두리의 복지에도 최선이고, 나도 편한 길이 아닐까....
4.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입양의사자에게 거절하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지금 두리를 보내버리면 그렝이가 얼마나 상심할지
차마 보기가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ㅠㅠ
최선을 다해서 그렝이가 두리 데리고 나가는 걸 막고
어떻게든 그렝이를 길들여 보려고 노력해야겠지요.
5.
하지만.... 이게 정말 잘한 결정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렝이와 두리에게 말입니다.
그렝이는 지금은 새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안에 있지만
실은 밖에서 사는 걸 더 편해 하는 거 같아요.
일단 저도 그렝이가 무섭지만 그렝이도 저를 무서워해서
항상 예민하게 긴장하고 사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두리를 입양보내면 두리는 거기서 호의호식하고 살 수 있을 텐데요.
여기서 엄마 그렝이랑 계속 함께 있다가, 자칫 제가 실수라도 하면
두리는 엄마따라 길고양이가 되어 버리고 말 가능성도 있습니다.
모자 이별도 물론 슬픈 일이지만, 그 순간을 참고 넘기면 되는 건데...
그런 슬픔을 제가 목격하기 싫다는 이유로 둘을 같이 집안에 두었다가
나중에 그렝이나 또는 두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그렝이와 두리를 함께 데리고 살겠다는 제 결정이 과연 잘한 건지...
두리를 데리고 밖에 나가려 하는 그렝이를 어떻게 막고 길들일 수 있을지...
막막한 밤입니다.
길고양이를 집에 들여 함께 산다는 게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군요. ㅠㅠ
어떻게들 하셨는지 노하우 좀 알려주세요. 후우~
얼마나 고민이 되셨으면..잠도 못 이루고 새벽에 글을 쓰셨네요..
여러 의견들이 있으시겠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건강한 길고양이(성묘)는 야성이 강한 특성상 집안에 두는 것이
그리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생각이예요.
따라서 "그렝이는 원래 제 현관 앞 보일러실에 들어와 살던 애니까"
내보내주시고 문제는 두리인데요.
저는 갯머루님이 이사갈 계획이 없고 계속해서 두리를 챙겨주실 수만 있다면
그렝이와 두리를 같이 보일러실에서 관리해주시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밥문제가 잘 해결되면 어미와 자식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경우가 많고
두리도 일정시간이 지난 후 중성화수술을 해주면
멀리 떠나지 않고 이미 중성화수술된 어미와 같이 지내지 않을까 생각되거든요...
그리고 확실한 입양처라면 몰라도
저는 주위에서 고양이 입양시킨 후 잘못되는 경우를 많이 봐서 그런지
입양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